이번 글에는 사진이 1장도 없고
그냥 썰만 풀 거니까 재미없으면 안보면 됨.
필자는 아주 딥한 우울증을
몇년 간 앓다가 정신과에 가서 약도 먹고
상담치료도 받고 장시간에 걸쳐
천천히 나아졌음.
덤으로 중증ADHD가 있다는 것도 알았고
지금은 그럭저럭 많이 호전되었다.
근데, 우울증이 딥하면 어떤 문제를
겪는지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
그리고 가벼운 우울증에 왔을 때
그냥 약 먹으러 병원 가라고 해도
말을 들어 처먹지를 않더라.
그래서 이게 얼마나 심각해질 수 있고
이게 어떤 기분인지에 대해 풀어줌.
제발 병원 좀 가라
1. 우울증의 시작은 어떤 느낌인가?
필자는 어릴 때 아주 어릴 때 부터
조울증이 심했음.
ADHD가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조증과 울증이 몇주 간격으로 찾아오고
거의 30살이 될 때 까지 이게 계속 반복됨.
근데 조울증은 그럭저럭 버틸만 했다.
왜냐면 울증이 와도 시간이 지나면 기분이
상향 곡선을 그리며 올라갈 테니, 단기적인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조증이 오면 어쩌냐고? 그것도 해결이 간단함.
조증이 심해지면 매우 괴로워짐.
가만히 있지 못하고 행동이 컨트롤이 안되며
슬슬 잠을 거의 못자게 되며
어차피 조증의 끝은 고통이 찾아오니
다시 기분이 하향곡선을 그리게 됨.
근데 30살 언저리를 기점으로 내려간 기분이
다시 올라오지 않는 다는 것을 눈치챔.
처음엔 "나이를 드니 이제 차분해진건가" 싶었고
이게 심각하다는 생각을 안해봄.
그럼 이 느낌을 간단히 표현해봄.
지옥문을 두들긴다.
"똑똑 계세요?"
"네"
"누구세요?"
"사탄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미치셨어요? 왜요?
"그냥요"
"???? 네 들어오세요"
하고 지옥문을 활짝 열고 들어감.
처음에 들어가면 별 거 없음.
"저기 앉아 계시면 됩니다. 커피 드릴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인가요?"
"아니요 따뜻한 겁니다."
그리고 앉아서 커피를 마심.
슬슬 지겨워짐.
"다시 나가볼게요"
"안됩니다. 못나가세요. 계속 앉아서
커피나 드세요. 잘 해드릴게요"
"???? ㅅ.ㅂ?"
이게 딥한 우울증의 시작이 된다.
"되게 매너가 좋으시네요?"
"네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게요"
이제 내가 떼를 쓰고 지랄 발광을 해도
맨날 쪄 죽는 지옥에서 뜨거운 커피만
줄창 마시면서 맨날 의자에 앉아 있어야함.
그리고 누워 있어도 되긴 하는데 바닥이 뜨거움.
다른게 문제가 아니라, 진짜로
어디가 망가지는 걸 알면서도
여기서 앉거나 누워서 더워 죽겠는데
맨날 뜨거운 커피만 주구장창 마셔야 함.
그리고 문 열고 못나감.
이게 딥한 우울증에 접어 들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2. 우울증에 대한 다른 비유들
흔히들 어디 늪에 빠져 있는 기분이다,
물 속에 있는 기분이다,
이런 말들 하잖슴?
다 맞는 말이다. 저 말들이 곧 지옥문을
열지 못하고 맨날 뜨거운 커피만 처마시는
느낌 그 자체임.
이런 기분이 왜 느껴질까?
바로 "나아질 수 있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미로에서 길을 잃었는데 잡고 오던
실뭉치를 놓쳐서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공포에 빠지게 됨.
차라리 육체적으로 어디가 아픈 게 낫다.
감기에 걸리면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쉬고
관절이 삐걱 거리면 쉬어주고 파스를 붙이면
나아질 거란 생각에 일상생활을 하잖아?
우울증에 깊게 빠지면 내가 과거의 나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엄청난 공포감이 몰려옴.
왜냐면 우울증이 오래 될 수 록 내가 망가지는 걸
쉽게 깨닫기 때문이다.
3. 사람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가?
필자는 스스로를 관찰하는 버릇이 있음.
그래서 필자가 어느 정도의 상태인지
항상 인지하면서 이 정도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기준과 희망으로 살아왔음.
근데, 우울증이 오래되면 슬슬 안그래도
ADHD 때문에 바닥 수준인 기억력이
아예 사라져 버림.
내가 뭘 했지? 뭘 해야 했지?
어디다가 뒀지? 부터 시작해서
더 심하게 망가지면 슬슬 본인이
누군지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수준까지 오게 됨.
내가 누구지? 라는 의문이 들면
인지능력이 박살나기 시작하는데,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어떤 걸 하고 싶었는지,
내가 살아있기는 한 건지,
레알 모르게 됨.
삶이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기분이 나기 시작하며
마치 영화같은 삶이 펼쳐 지는데,
필자가 이 때 병적으로 반복해서
본 영화가
1. 바닐라 스카이
2. 나비효과 감독판
이 두개였다.
우울증이 심한 분들은 이게 뭔 느낌인지
대략 알게 될 거다.
꿈이랑 현실을 구분 못하는 건 기본임.
어제 꿈 꾸고 나면 현실과 구분을 못함.
우울증이 더 딥해질 수 록 글을 못읽게 되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못알아 듣게 되고,
이렇게 글도 못쓰게 되고,
나중엔 내가 두명으로 분리되는
기분도 경험할 수 있게 됨ㅋㅋㅋㅋㅋ
스스로 스스로에게 토론을 하는 버릇이 있는데,
어느날 내가 나한테 토론으로 지는
황당한 경우를 보게 되고,
슬슬 나랑 또 내가 있는 상황에 놓여짐.
그때 부터는 하루종일 스스로에게
토론을 하는게 아니라,
스스로와 말을 하는 지경에 이른다.
자아가 레알 분열되기 시작함.
어릴 때 심리학에 관한 책 보면
자아가 분리되는 어쩌구 그런 이야기 나오지?
그거 직접 겪을 수 있음.
4. 음모론에 심취하게 되는 현상
그때부터 정상적인 판단 자체가 안되면서
슬슬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믿게 되버림.
필자가 중학생일 때 911 테러가 났고
필자는 그걸 TV 생중계로 다 봐서
아주 생생하게 기억함.
근데, 유튜브에 기가 막히게
911 테러는 거짓말이고 트레이드 빌딩도
멀쩡한데 언론에서 지우는 거라는
영상을 보게 됨.
말도 안된다는 걸 알면서 그걸 반복 시청하고
어느날부터 머리 한 구석에서
"이게 진짜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함.
그리고 일루미나티, 파충류 외계인도
믿게 되면서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날이 옴 ㅋㅋㅋ
친구가 되게 당황하면서 한심하게 봄.
어르신들이 이상한 음모론 엄청 보지?
그 이유가 바로 이거임.
나도 모르게 현실에 있는 이야기보다
음모론에 더 심취하게 된다.
이쯤 오면, 성격도 분명 다 이상해져 있는데
이상한 말만 하니, 주위에서 광인 소리를
듣는 지경에 오고 내가 스스로 미쳤다고
인정하게 된다.
아 위의, 토론이 뭐였냐고?
필자 스스로가 미쳤는지 아직 아닌지
스스로와 토론 배틀을 벌였는데
내가 나한테 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그 날이 생생히 기억나고
얼마나 황당했는지도 기억이 날 정도로
충격 그 자체였다.
5. 길거리에서 허공에 대고 화내는 이유
솔직히 이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다.
근데 그 지경 직전까지 오게 됨.
내가 여기서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진짜로 미쳐서 엄청 편하게 살 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평소에 억눌렀던 분노를 그냥 풀어내고
미친 사람처럼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됨.
나도 모르게 집에서 혼잣말로 화를 내고
눈이 돌아가기 시작하는데,
길거리에서 혼자 화내시는 분들을 직접
보고는 두가지 생각을 함.
1. 아 나도 정신줄 놓으면 저럴 수 있는데
편해보인다.
2. 아 큰일났다 저러면 안되는데
그리고 필자는 2번을 선택했고
병원을 찾아갔고 거기서 스트레스 지수 검사에서
거의 만점을 찍는 기염을 토하며
치료를 하게 된다.
5. 그럼에도 돌아오지 않는 것
필자는 완전 망가지고 나서
아주 장시간에 걸쳐 천천히 우울증에서
기어 나오게 됐다.
약과 심리상담 치료가 아주 큰 역할을 했고
심리상담 치료 이후로 뭔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생각이 턴어라운드 하면서
아주 아주 천천히, 다시 망가지면 다시 딛고
올라오는 힘이 생겼고,
조금씩 나아지면서 "아 나도 조금만 더
기어 올라오면 나아질 수 있겠구나" 라는 희망이 생김.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졌고
다시 어제로 돌아가도 아득바득 기어서
오늘로 돌아왔고 내일로 향했다.
매일 매일이 나아졌고 매주, 매달, 매년
약 5년 넘는 시간 동안 괴랄했던 생각이
점차 돌아왔고, 광인 같았던 행동이 조금씩
잡혀 갔고, 괴팍한 건 원래 필자가 좀 시부레
태어날 때 부터 괴팍해서 그건 어쩔 수 없다고 봄.
근데 지금은 매우 좋아졌고 앞으로도 좋아질거다.
스스로가 확신하고 있다.
필자는 지금도 느낀다.
작년의 필자와 올해의 필자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그럼에도 아직도 긴 글을 읽지 못함.
어릴 때 책을 엄청 읽어댔고
뭔가 읽는 것에 강박이 있을 정도였는데
긴 글 자체를 읽지 못함.
심지어 언어영역은 지문 다 읽고 풀고
비문학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풀었는데
장문을 읽는 건 더 이상 할 수 없게 됨.
그냥 이상하리 만치 단어 단위를 구분 못하겠드라.
이외에도 어딘가 분명히 망가져서
다시는 기능회복이 되지 않는 영역이 있는데
아직도 그게 어딘지 알 길이 없음.
뭔가 다 부셔져서 갈아 끼지도 못하는
부품이 있는데, 부숴진 잔해조차 찾지 못함.
6. 마무리
마무리는 솔직히 할 말도 없고
대충 휘갈기고 끝낼 거임.
사실, 이겨내는 법 몇가지를 치료 중에
코칭받았고 그걸 해내면서
기적처럼 좋아지는 계기가 됐는데
기본적인 거 하나 빼고 안알랴줌.
왜냐면 니들 알려주면 병원 안가고
그거만 해도 나아진다고 자기 위로나
할 거 뻔하잖아?
그 중 한 방법.
책상위의 쓰레기나 방구석 쓰레기
한번에 다 청소하지 말고
10%나 20%씩만 버려라.
그걸 하루에 몇번씩 반복하면서
몇날 며칠 몇주 몇달 계속 하면 됨.
오케이?
다 됐고,
필자가 할 말은 딱 하나다.
필자가 쓴 글을 보고
저렇게 되기 싫으면 우울증이
심해졌다는 기분이 왔을 때
주저말고 정신과를 가라.
우울증 약을 먹어라.
너무 딥하지만 않으면 독감 앓다가
나아지듯 우울증에서 벗어날 거고
심하면 상담치료도 받아라.
절대 본인이 이겨낼 수 없다.
노엘 갤러거를 엄청 좋아하는 필자지만,
"정신과에 왜 가세요? 그 돈을 저에게
주세요. 제가 치료해드릴게요" 라는
노엘 갤러거의 드립은 두고두고 원망함.
난 할 수 있어! 라고 제발 생각하지 마라.
난 할 수 없어! 라고 빠르게 인정하고
제발제발 병원가서 치료를 받으시라고
글을 적어본다.
알았지? 병원가 새기들아
이상한 소리 쳐 하고
커뮤니티에서 상대방 비하하고
욕쓰고 타 집단 욕하거나 하지 말고.
그거 병이다.
치료 받아라.
현실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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